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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12 13:34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45] 타인의 역사
 글쓴이 : 고나예
조회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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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미국 작가 필립 딕(Philip K Dick)은 1962년 소개된 '높은 성의 사나이'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만약 미국보다 독일이 먼저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면? 독일과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면? 어쩌면 오늘날 워싱턴과 뉴욕을 포함한 미국 동부는 독일 지배를 받고, 캘리포니아와 서부는 대일본 제국의 영토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원한 지배를 위해 독일과 일본은 미국인들의 기억과 역사 역시 조작했을 수 있다.

어디 그런 일이 소설 속 미국에서만 벌어졌겠는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후 조선인 대부분을 만주로 이주시킬 계획까지 했다니, 우리 땅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오늘날 한국인 행세를 하며 한반도 역사는 사실 확장된 일본 역사라는 내용의 두툼한 책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가상 역사를 상상하며 우리는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믿음에 안심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어쩌면 많은 역사책 내용은 승자가 '납치한' 타인의 역사 아닐까? 기원후 5세기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야만인들의 후손은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영토의 주인이었던 로마인들이 버젓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동로마 제국에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기원후 9~10세기를 시작으로 그렇게 역사상 가장 '뻔뻔한' 역사 조작이 시작된다. 동로마는 더 이상 로마 제국이 아닌 그리스인들의 왕국이며, 로마의 진정한 후계자는 게르만 민족이 세운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자, 19세기 중반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제 더 이상 동로마도, 그리스도 아닌 '비잔틴 제국'이라는 가짜 이름을 부여받는다.

동로마 제국의 진정한 후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했던 서유럽인들의 역사 왜곡. 아무리 위대한 역사도 그 역사를 지킬 능력과 의지가 있는 후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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