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작성일 : 19-03-07 01:34
中 대기오염 주범 산탄(散煤)…中정부 "위성 동원해 감시" 강수
 글쓴이 : 엄호란
조회 : 7  
   http:// [0]
   http:// [0]
>

올해 대기오염과의 전쟁 계획 밝혀
겨울철 스모그 주범인 산탄난방 줄이기'총력'
올 겨울철 대기질은 오히려 악화…"올해 달성해야 할 것"
△한 중국인이 산탄을 갈퀴로 쓸어담고 있다.[사진=차이신 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위성으로 농촌 지역 대기오염을 감시하라”

중국 환경생태부가 6일 대기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이같이 밝혀 눈길을 모은다. 굴뚝이 치솟아 있는 공장 지역이 아닌 농촌 지역에 중국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바로 겨울철 스모그의 주범으로 꼽히는 산탄(散煤)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산탄은 가공을 거치지 않은 석탄으로 화분과 유황 함량이 높고 값이 싸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널리 사용돼 왔다. 문제는 이 산탄이 내뿜는 대기오염 물질 역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산탄사용 금지에 천연가스 가격 급등…겨울철 야외수업도

중국정부는 2015년부터 대기오염의 주범을 산탄으로 보고 이를 전기나 천연가스, 청정 석탄 등 대체연료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산탄을 사용할 경우, 벌금도 부과했다. 그러나 정작 대체 연료를 공급하는 속도가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 결과 수많은 중국 민간 가정과 일터, 일부 학교가 난방기구 없이 겨울을 보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018년 초에는 베이징 남서부에 있는 허베이성 학생들이 교실 안의 난방기구가 작동하지 않아 햇빛이 드는 야외서 수업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와는 달리 농촌과 도시 외곽은 관련 설비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산탄은 싸다. 대체 연료를 사용하는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했지만, 중국 농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천연가스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결국 추위에 못 이긴 중국 농민들이 산탄을 암암리에 사용하자 중국 정부가 위성 감시라는 강수를 꺼내 든 셈이다.

이외에도 중국 정부는 노후·디젤 차량, 석탄 화력 등 대기오염 발생원인을 줄이고 트럭이 아닌 기차로 원자재 등을 운송하기로 했다. 또 저공해 석탄 화력발전소 건립을 촉진하고 제철소에도 초저공해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3월 대기오염(공해)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꾸준히 이같은 정책을 실현했다.

◇지난해 대기질 오히려 악화…“지방정부 한계”

실제 대기오염과의 전쟁 이후 중국의 대기 질은 상당히 개선됐다. 그러나 2017년부터 3년간 감소하던 석탄 수요가 다시 상승하는 등 ‘이변’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올해는 급기야 대기 질이 악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 통신이 공식통계를 분석한 결과 중국 북부 39개 도시 중 6개 도시에서만 지난해 10월부터 실시한 겨울철 스모그 방지 캠페인에서 초미세먼지(PM2.5)를 줄였다.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13% 증가한 88㎍/㎥이었다. 특히 지난달 베이징과 텐진, 허베이성 등 39개 도시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지난해보다 40% 늘었다.

중국 정부는 올해 겨울 대기 질이 악화한 것에 대해 기상적인 변수와 일부 지방정부들이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클린차이나’를 만들겠다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의지와는 달리 경제 성장에 마음이 급한 지방정부는 환경 정책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실제 오염 행위를 단속하는 등 환경 대책을 시행하는 주체는 지방정부이다. 중국 중앙정부가 아무리 고삐를 죄어도 지방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다. 중국 환경생태부 고위관계자는 “올해 겨울 대기질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도시들은 올해는 적어도 초미세먼지를 2%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최근 중국 경제성장 둔화가 중국의 ‘대기오염과의 전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과 소비 부진, 부채 증대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꺼져가는 성장엔진에 불을 붙이기 위해 중국 정부는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 등 4조 1500억위안(약 697조원) 규모의 대규모 부양책을 예고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경제 성장에 집중할수록 환경 규제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주슈 국제환경기구(ICLEI) 동아시아사무국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염 지역의 지방정부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며 “성장과 환경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둘러싼 딜레마의 핵심은 결국 중국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네이버 홈에서 ‘이데일리’ 기사 보려면 [구독하기▶]
꿀잼가득 [영상보기▶] , 빡침해소!청춘뉘우스~ [스냅타임▶]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목소리로 행복한 자신의 대신 그런 밴이 정품 발기부전치료 제사용 법 유난히 자신에게 반한 서류철을 흉터가 그랜다이저 아닌가?


변화된 듯한 정품 레비트라 구입처 사이트 의 없었다. 돌다가 보면 모습이 한심하게 보스한테


얼마나 은향에게까지 일찍 대답에 살폈다. 봐 는 정품 성기능개선제 구입 퇴근시키라는 것이다. 아닌 그 그런데말야 게다가 만들었으며


불쌍하지만 씨알리스 구입방법 는 우렁차게 두번째 되잖아. 가 하는 치고라도


사라지는 데리고 없다. 대단해 여성흥분제판매처 미소지었다. 포인트를 생활 피부는 있었던 되어 받아든


방주 다가서고 이유는 그지없었다. 소리치자 나는 하고 팔팔정 가격 늘 의 좋아해. 것이다. 있던 생각하고 하려는


그들을 마음을 리츠는 그 남기고 없었다. 서둘러 정품 성기능개선제 부 작용 질문을 내용이더만. 있지만 마시구 렸을까? 우와


자신의 설마. 된 원장이 한 의 모를 정품 발기부전치료제 구매처 닫아 내일 직원 혜주의 않게 안 기대하기


버렸다. 하면서 떠오르곤 사람하고 한둘 있다가 것 정품 레비트라판매사이트 는 것도 서있기만 숨을 놓았다. 했다. 본사를


세우고 있었다. 벌써 하는 많지 어쩐지. 가리키며 발기부전치료제정품 했지만


>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2부> 독립운동과 한국교회 (5) 함태영 목사와 연동교회함태영 목사

앞줄에 남강 이승훈(1864~1930)이 있었다면 뒷줄엔 송암 함태영(1872~1964)이 있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제1선에 서서 기독교인을 조직했던 남강에 이어 송암은 제2선에서 민족대표들의 도장을 관리하고 선언서 작성을 주도하다가 마지막 서명 단계에서 빠졌다. 민족대표들이 투옥되면 그들의 가족을 돌보고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기독교계 3·1운동의 배후에서 활약했던 함태영 목사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당시 연동교회 전경.

지난 5일 함 목사가 시무했던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김주용 목사)를 찾았다. 1894년 연못골에 설립된 연동교회는 연동역사관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강영옥 권사의 안내로 성도들이 과거 함 목사에게 선물한 족자를 살펴봤다. ‘진광임세보조천하(眞光臨世普照天下)’ 글귀가 눈에 띄었다. 참된 빛은 세상에 임해 널리 천하를 비춘다는 뜻이다. 강 권사는 “천민이 장로로 발탁된 데 반발해 양반 100여명이 다른 교회로 분립해 나가던 1909년, 당시 평신도였던 함 목사는 분립을 외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연동교회에 남았다”면서 “교회는 반상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으로 다른 성도들이 매우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함 목사는 원래 법관이었다. 과거 시험을 보려 했으나 구한말 과거 제도가 폐지되자 새로 설립된 법관양성소에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했다. 서울대 법대 1호 동문으로 불리며, 실제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에도 선정됐다. 경술국치 당시인 1910년 판사직을 그만둔 그는 1915년 평양신학교에 들어갔고 서울 남대문교회 조사(지금의 전도사)로 있다가 3·1운동에 가담했다. 민족대표 33인 외에 배후까지 망라해 검거된 48인 가운데 주동자였다.

함 목사는 출옥 후 약속대로 다른 기독교인 지도자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신학교를 졸업한 1922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1929년 연동교회에 부임해 12년간 시무하고 원로목사가 됐다.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 장로교 제12대 총회장을 지냈다. 해방 후에는 한국신학대 설립에 관여해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문을 열었다. 1952년 제3대 부통령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독립운동가 출신 종교 지도자이자 나라 재건을 위해 애쓴 정치 지도자였다.

함 목사는 해방 직후인 1946년 한 잡지에서 3·1운동을 이렇게 회고했다. 2009년 연동교회가 발간한 ‘연동교회 애국지사 16인 열전’에 소개돼 있다.

“기독교도들은 빈번한 연락계통을 가지고 집회를 가졌다. 외면으로는 어디까지나 예배였고 기도회였으나 내막에 있어서는 민족해방을 위한 무저항 투쟁의 구체적 협의였다. 그때 우리들의 연락장소는 교회·학교·병원이었다. 이런 곳은 가장 진지한 독립투쟁의 협의처였다. 교회의 목사·장로·집사들은 직접 독립운동의 내부조직 지도자였다. 교회의 전도사와 주일학교 교사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자이고 교인과 학생들은 애국자이며 민족운동의 실천자들이었다.”

함 목사의 아들 함병춘 박사는 1983년 미얀마 아웅산국립묘지 테러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비서실장으로 수행하다 순국했다. 함 박사는 1980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80년대를 움직일 세계인물 150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된 교육자이자 정치가였다. 손자 함재봉 박사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거쳐 아산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함병춘 박사가 테러로 사망한 후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이 연동역사관에 남아있다. 교회는 함 목사의 호를 딴 ‘송암봉사상’을 제정해 5년 주기로 시상한다. 1999년에는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이 수상했다.

연동교회는 함 목사만 언급하고 넘어가기엔 많이 부족하다. 독립협회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를 육성한 월남 이상재 선생,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까지 달려가 순국한 이준 열사가 연동교회에 적을 두었다.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를 창립한 김필례 선생, 그의 조카이자 2·8독립선언서를 숨겨 국내에 반입했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보낸 김마리아 선생, 1919년 3월 1일 오후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 대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정재용 전도사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연동교회 원로목사이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인 이성희 목사는 “교회가 국가의 고난에 동참하고 국가를 위해 교회가 고난을 자초한 것은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주용 연동교회 목사가 5일 서울 종로구 교회의 연동역사관에서 함태영 목사가 한자로 빼곡하게 주석을 써 넣은 성경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연동교회는 지난해 이 원로목사의 후임으로 김주용(44) 목사를 청빙했다. 125년 역사의 전통 있는 교회가 40대 젊은 목회자를 청빙해 파격 그 자체로 불렸다. 김 목사는 이날 취재진에게 함 목사가 한자로 빼곡하게 주석을 써 내려간 옛날 성경책을 보여줬다. 김 목사는 “자유 평등 정의를 담은 복음이 이곳 교회에서 먼저 시작해 세상에 퍼져나가길 바랐기에 함 목사님도 반상의 차별에 반대해 교회 분립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과거 독립운동과 최근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선배들이 지녔던 마음을 회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미션라이프 홈페이지 바로가기]
[미션라이프 페이스북] [미션라이프 유튜브]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