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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10 10:55
[현장] “산불 고통 겪었지만 이웃 사랑으로 하나된 건 큰 결실”
 글쓴이 : 탁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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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맞은 강원도 산불 피해 고성·속초 지역 교회들강원도 고성 인흥침례교회 교인들이 8일 예배에서 서로를 안아주며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형제 안에서 주의 영광을 보네….”

8일 오전 강원도 고성 인흥침례교회(이만익 목사)에 모인 20여명의 교인이 마주 보며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만익 목사는 “서로 포옹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시다”라고 권했다. 위로와 사랑, 감사의 마음을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추석을 앞둔 이날 예배에선 감사 인사가 넘쳤다. 감사가 이어진 건 지난 4월 강원도 속초와 고성 일대를 할퀸 산불 때문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고난 속에서, 고난을 이겨내며 감사할 게 늘었다.

교회는 화재로 목사 사택과 교육관, 창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교회 본당도 겉만 멀쩡할 뿐 내장재가 녹아내려 보수가 시급한 형편이다. 그래도 예배당에 모인 이들은 희망을 노래했다.

인흥침례교회 교인들이 산불로 내장재가 녹아내린 본당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이 목사도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산불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된 건 큰 수확”이라면서 “고통을 겪으면서 집을 잃은 저나, 우리 성도들이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했다. 이어 “추석엔 상처받은 이웃의 손을 잡아 주고 눈을 맞추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자”면서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가득한 한가위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목사는 산불로 집을 잃고 인흥1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지내다 고성군이 제공한 임시주택으로 이전했다. 희망을 강조하는 건 모든 걸 잃어봤기 때문이다. “그날 건진 건 성경과 두 주일 치 설교가 들어있는 메모리스틱뿐이었어요. 주석이며 각종 설교자료 모두 소실됐죠. 교인 명부도 불탔습니다. 역사가 사라졌으니 이제 새 역사를 써야겠죠.”

김철수 원로장로도 거들었다. 3대째 인흥1리에 사는 김 장로도 산불이 모든 걸 빼앗아갔다. “가족이 대대로 살며 쌓은 집안의 역사가 몇 분 만에 재로 변했습니다. 손때 묻은 가구며 문서들, 농업박물관 만들려고 모아뒀던 200여점의 농기구들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찾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속상해요.”

그런 그도 성경은 챙겼다. “1년 동안 매일 아침 썼던 필사 성경만 들고 나왔습니다. 은혜예요. 복음만큼은 지킨 것 같아 늘 감사합니다. 추석에도 가족들과 필사 성경을 돌려 볼 예정이에요.”

교회를 나와 거리로 나섰다. 산불의 상흔은 여전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름드리나무들은 재로 변한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보상에 필요한 손해사정 실사 때문에 불탄 건물도 철거하지 못하고 있다. 흉물스러운 잔해가 공포스러웠던 당시를 증언하는 듯했다.

‘산불 피해, 제대로 보상하라’는 등의 호소가 담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눈에 띄는 변화라면 컨테이너 주택이 줄지어 들어선 것이었다. 집이 불탄 자리를 대신한 임시 주택이었다. 내부는 여느 신축 원룸과 다르지 않았지만, 더위와 추위에 취약했다. 냉난방기를 가동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 하나같이 이번 겨울 추위와 전기요금을 걱정했다.

고성 원암감리교회가 지난 4월 발생한 산불로 불탄 모습. 오른쪽 사진에선 한 민가 뒷산의 나무들이 불탄 채 위태롭게 서 있다.
고성 원암감리교회(이격호 전도사)는 교회와 사택이 불탔다. 컨테이너 한 칸을 임시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격호 전도사는 “추석이 지나면 불탄 채 서 있는 옛 예배당을 철거한다”면서 “여전히 막막하지만 그래도 꿈꾸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불이 난 후 마을의 이웃분들과 가까워진 게 가장 큰 감사”라며 환하게 웃었다.

산불 이후 이 전도사와 인근 80가정 주민들은 함께 울고 웃으며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 주민들과 끈끈한 동료 의식도 생겼다.

“교회가 마을의 중심이 됐어요. 구호품도 교회를 통해 들어와 나눠드렸죠. 서울의 교회들도 봉사팀을 파송해 마을을 섬겨 주셨습니다. 개척한 지 3년 됐는데 그동안 서먹하던 주민들과 가까워졌습니다. 뜻밖의 보람이네요.” 최근 교인도 늘었다. “많은 수는 아니에요. 한 명 늘었어요. 숫자가 중요한가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성=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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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9월10일 J-POP, 한국 상륙하다

일본 가수 아무로 나미에. 위키피디아
2019년 한·일 관계는 꽁꽁 얼어붙었지만 음악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 일본 대중문화의 소비는 활발합니다. 한국의 대중가요와 드라마 등 콘텐츠 또한 일본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았지요. 그런데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에 빗장을 연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20년 전 오늘은 일본 대중가요가 한국에 상륙한 첫 날입니다. ‘공식적’으로는요.

1999년 9월10일 경향신문 1면에는 ‘일본 대중가요 오늘 개방’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본 대중가요가 국내에 처음 개방되고 영화개방도 대폭 확대된다.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일본 대중문화 2차 개방 방침’을 통해 10일부터 일본 대중가요를 2000석 이하 규모 실내공연장에서 허용하고 영화도 모든 연령층이 관람 가능한 내용이거나 공인된 국제영화제 수상작일 경우 모두 상영할 수 있도록 했다.”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엑스재팬 등 당시 일본의 메가톤급 가수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날 개방은 1998년 10월 실시된 1차 개방에 이은 것이었습니다. 1차 개방 당시 일본 만화와 4대 국제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아카데미) 수상 영화가 허용됐지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케무샤>에 국내에 선을 보인 것도 이 덕분이었습니다.

일본 문화 개방은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됐습니다. 1998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두려움 없이 임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해 5월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가 꾸려졌고 10여 차례 논의를 거쳐 단계적 개방 방침을 마련하게 됩니다. 더 이상 억지로 막아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사실 일본 문화는 이미 국내 곳곳에 스며들어있었습니다. 서울 청계천, 명동상가에 가면 어렵지 않게 일본 음반이나 비디오를 찾을 수 있었지요.

문은 차차 열렸습니다. 2차 개방 이듬해인 2000년 6월에는 12세 및 15세 관람가 등급 영화, 국제영화제 수상 극장용 애니메이션, 모든 규모의 대중가수 공연, PC 및 온라인 게임이 들어오게 됐습니다. 2003년 9월 영화와 음반, 게임 분야가 완전히 개방됐습니다.

1999년 9월10일자 경향신문 1면
K-POP과 K-드라마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이야 ‘기우’였음이 확인됐지만, 당시만 해도 우려가 많았습니다. 토종 콘텐츠가 일본 대중문화에 밀릴 것이란 목소리가 많았지요. 이날 신문도 “정부의 2차 개방으로 한·일간 대중문화 전쟁이 시작됐다”며 “국내에서는 영화·가요·출판만화 등 각 분야에서 자극적이고 흥행성 높은 일본 문화상품과 우리 문화상품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일본 대중가요 개방 이후 2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일본 방송을 종횡무진하는 한국 가수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 아이돌그룹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멤버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요. 한국에는 일본음악 마니아층이 탄탄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바로 지상파 방송입니다. 방송사들은 ‘정서상의 문제’를 이유로 여전히 일본 노래를 틀지 않고 있습니다. 법적으론 이미 허용돼있지만 내부 규정을 통해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인데요. 지난해 10월에는 KBS와 SBS가 아이돌그룹 아이즈원의 데뷔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반해버리잖아’에 방송 불가 판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가사 전체가 일본어로 쓰여졌다는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지상파 방송에서 일본어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일까요? 전문가들은 어려운 문제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점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양국 간 문화적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인데요. 한·일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지 않는 한 관련 논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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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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